2016.04.25 03:09
온돌, 고래, 그리고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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Who's 아누나끼
One person's miracle is another person's science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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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반도에서 알라스카까지는 작은 섬들이 계속 나열되어 있어서 작은 배로도 항해가 가능했던 걸로 생각됩니다. 특히 고대의 한반도 주민들은 항해술에 매우 능했다고 전해지고요.
우리의 역사 중에 왜곡된 부분이 많지만 특히 백제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습니다. 우리가 배울 땐 기억나는 부분이 의자왕의 방탕과 삼천궁녀 정도였었으니까요. 최근에 나온 여러가지 자료를 보면 백제는 고구려 못지 않게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것으로 나옵니다. 중국의 동부해안의 상당부분이 백제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합니다.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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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... 그땅들
부여 백마강엔 지금 물이없어요.
삼천궁녀가 다 마셔서 그렇다네요...ㅋㅋ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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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나라에서 고래잡이 하면 제일 대표적인 곳이 울산 "장생포" 라는 곳이었어요, 동해안 포항쪽도 조금씩 고래 잡이를 한다고는 들었지만 그 수량이나 규모가 장생포를 못 따라간 것으로 예전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. 장생포는 지금 공업단지들이 들어와서 더 이상의 어촌은 아니지요.
얘기 듣기론 고래잡이 산업이 엄청 큰 규모였었구요, 고래배를 가진 몇몇 회사는 요즘의 현대, 삼성 정도의 권력을 가졌던 것으로 들었습니다.(그 옛날 현대,삼성등이 생기기전에는요)
그 잔재가 제가 어렸을때까지도 조금 남아 있었어요. 고래배가 들어 온 다음날이면 시장에 싱싱한 여러종류 여러부위의 고래고기가 온통이었구요,,,, 그리고 고래배는 예전 조선시대의 그런 조그마한 배는 아니고 많이 큰배였다고 들었습니다.
그 기억으로 보면 위의 학설은 분명히 근거가 있는 학설로 인정합니다. -
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.
일본에서 소학교 다닐 때 급식으로 고래고기가 나와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.
지금은 환경보호로 인해서 고래잡이가 엄청나게 제한이 되었죠.
그 머나먼 거리까지 어떻게 교류가 가능했는지.
학창시절 백제문화제 행사 땜에 점심먹고 땡볕에서
건 두달정도는 매일 연습했던 지겨웠던 기억이 있습니다.
금강다리밑 모래밭에서 하얀한복입고 청사초롱 들고 강강 술래를
해야 하는데 치마 밟히고 초불꺼지고 초불 안꺼지게 살살 돌라고 혼나고...
공주는 뭔 행사가 그리많은지...
유명인사도 많고..
이에리사선수 탁구 우승했다고 공부안하고 길거리서서 박수쳐야했고...
밤이면 불꽃놀이 여기저기 펑펑
요즘도 이런행사는 이어지겠죠.??